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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문학과 선교문학 / 21세기시인통신학교장 김성구 목사
기독교문학과 선교문학 / 21세기시인통신학교장 김성구 목사 1. 기독교문학작가의 정신 기독교가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지다하다. 찬송가의 번역 간행은 우리나라 신시(新詩) 형성에 크나큰 구실을 했고, 또한 성경번역은 우리나라 소설문학의 발전에 문체면에서나 사상면에서 크게 이바지했다. 특히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는 기독교 정신을 깊이 터득하여 작품 속에 살려 놓았다. "기독교적인 사상이 차츰 우리 문학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춘원 이광수의 작품에서부터라고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춘원 이광수는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은 인도주의자요 계몽적 작가로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소설을 쓰는데 첫째 목표가 '이것이 조선인에게 읽혀져 이익을 주려'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나는 내 소설이 조선인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읽혀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읽을 것을 가지지 못한 이는 조선인이요, 또 내가 조선인인 까닭이다." 춘원 이광수는 이렇게 자신이 민족주의작가로서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기독교가 춘원 이광수에게 작가로 미친 영향이라면 작품 주제를 성립시키는 방법을 배우는데 그쳤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적 사상적 영향은 끼쳤을지라도 만족할만한 기독교문학으로 승화시키지 못하였다. 그것은 시대적 상황이 그를 민족주의자로서의 의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기독교적인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렬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있다. 그것은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가 기독교적이었던 데서 온 결과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김희보,「韓國文學과 基督敎」p.7-9, 1979.현대사상사) 춘원 이광수는 소설가로서 자신이 왜 글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었다. 민족을 깨우는 일을 위해 소설을 쓰겠다는 분명한 작가정신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광수는 기독교적인 바탕에 민족의 미래를 향한 불타는 사명의식이 있었으며 작품활동을 통해 충분히 작가정신이 드러난 작품들을 남겼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작가정신이 기독교를 앞서가느냐 아니면 기독교 신앙 토대 위에 세워지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 주변 냄새만 나게 하느냐, 기독교 문학으로 승화되느냐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 문인들은 기독인으로서의 작가정신이 확실하게 확립되지 않고서는 기독교문학으로서의 합당한 작품을 쓸 수가 없을 것이다. 기독교문학은 기독교 사상을 가진 기독교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가운데 하나님의 숨결을 의식하며 작업한 작품이다. 기독교 문학은 하나님께서 작가의 삶 속에 역사 하심을 표현하는 작업이며 이 작품활동의 궁극적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냄에 있다. 기독교 문학에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에 대하여 작가의 문학적 기교를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기독교문학은 믿음·소망·사랑의 신앙성과 빼어난 문학성의 조화 속에서 독자에게 그리스도의 향기와 구원의 빛을 제공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대문학에서 기독교 수용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독자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훌륭한 문학성을 토대로 성령의 조명 속에 성경말씀이 인간 삶의 육화(肉化)가 역동적으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작가의 정신이 구속신앙의 확신이 있어야 하며, 건전한 신학적 바탕을 토대로 기독교문학가의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문학의 성공여부는 신앙성과 문학성을 그 작품이 어느 정도 훌륭하게 조화시켜내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김경완,「기독교 문학과 삶의 변화」, 2000.도서출판 이레서원) 기독교문학의 작가정신을 정리해보자. 첫째,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창조주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았으므로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한다. 셋째, 루터의 종교개혁정신인 이신칭의(以信稱義)와 이신득구(以信得求)사상에 근거한 신앙이 있어야한다. 넷째,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확신이다. 다섯째,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이다. (롬11:36) 여섯째, 땅 끝 선교사상이다. (행1:8) 일곱째, 아가페 사랑의 정신이다. (요13:15) 여덟째, 부활신앙이다. (고전 15:3-4, 35-58) 아홉째, 재림신앙이다. (계22:12, 20) 이와 같이 개혁신앙에 기초한 기독교문학작가가 기독교문학의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게될 것이다. 기독교문학은 바른 신앙을 소유한 작가정신이 확실한 문인에 의해 만들어져야하며, 또 현대인의 영적각성을 자극하는 미적 서술이어야 한다. 급진적 세계성의 위에 절대적 신앙을 증거하며 표현하기 위해 성경말씀이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세속적인 세계관이 세상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때에 기독교사상으로 감동을 주는 문학작품들이 세상에 많이 나온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없을 것이다. 2. 기독교 문학의 정의 기독교문학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는가? 사람들은 무조건 기독교적인 내용이 있거나 성경구절이 있으면 무조건 기독교문학이라 생각하거나 기독교인이 쓰면 기독교문학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내용이나 사상이 가지고 있어도 작가가 기독교인이 아니면 그것은 또 기독교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문학은 기독교인이 선교문학적 사명을 가지고 작품에 임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기독교문학이 가지는 사명과 특성에 대하여 여섯 가지로 정리해 보자.(아래 글은 기독교문학에 대하여 정리한 김경완의 글에서 요약하여 발췌하고 필자가 수정보완한 글이다.) <1> 성경에 근거한 문학 기독교문학은 성경 66권에 근거한 문학이다. 성경에 근거한 문학으로 기독교문학이야말로 진정한 결실을 거둘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구절 몇 개를 인용했다고 성경에 근거한 문학은 아니다. 성경에 기초한 문학은 방황하는 심령들에게 생수를 공급하는 구원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문학들은 결국 사람들을 더 공허하게 하고, 방황의 늪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인간의 근본을 해결할 만한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학은 궁극적으로 삶의 진실과 구원을 추구하는 예술의 장르이다. 따라서 기독교문학은 성경에 근거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표현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을 대표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온전케 한다. 기독교문학이 추구하는 인격적 덕목들이 성경에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사상의 뼈들에 언어를 불어넣음으로써 문학의 몸을 만들게 되는 것이 기독교문학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생기를 잃고 흐물거리는 오늘의 우리 문학에 기독교는 일어버린 주제를 제공함으로써 문학을 구해낼 수 있다.(이승우, 신앙과 학문 제4권 3호. 기독교문학연구회) <2> 믿음을 갖게 하는 문학 기독교문학은 독자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무르익어 표현될 때, 공감있는 생명력을 지닌다. 하나님을 믿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 계시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고백하는 신앙의 바탕 위에 '사죄의식과 영생소망'을 바탕으로 공의와 사랑을 실천해 가는 신앙인을 지향하는 것은 기독교문학의 중요한 사명이다. <3> 은혜를 깊이 알게 하는 문학 기독교문학은 독자가 은혜의 깊이를 알도록 인도할 때 문학적 상상력이 본연의 빛을 발하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한 서구의 기독교 작가들의 문학적 특징은 무엇보다도 깊이의 차원- 그 아슬아슬한 심연의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영혼의 드라마, 선과 악(혹은 하나님과 사단)의 국경선에서 전개되는 내면의 싸움을 추적하는데 있다.(김우규, 기독교와 문학, 1999. 종로서적) 여기서 죄를 회개하고 거듭난 인간의 진정한 기쁨을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과 죄의 소욕이 치열하게 충돌하는 영적 전쟁터로서의 마음을 그려낼 수 있다. 여기에서 섬세하고 치밀하며 고도의 숙련된 문학적 장치가 요청된다. 문학적 균형미와 조화미가 필요하고 적절한 용어의 선택과 독특한 수사법이 동원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우주의 모든 피조물을 그 소재로 취급할 수 있다. 기독교문학도 이 다양한 소재에 언어, 이미지, 인물, 사건, 배경, 실제적 체험 등을 통해 은혜의 깊은 세계를 그려내게 된다. 인간세상의 갖은 우여곡절과 질곡을 벗어나 하나님 안에서 참다운 은혜를 깨닫게 되는 주인공의 행로를 통해 독자는 은혜의 심연을 체험하게 된다. 은혜의 깊이를 가진 내용과 문학적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룰 때 독자는 감동을 얻게 된다. 죄악 된 자아가 진리의 말씀을 만날 때 은총을 입어 새로운 탄생을 체험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통해 독자는 깊은 은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은혜의 깊이를 알게 하는 것은 기독교 문학이 표현해야하는 주요 특징들이다. <4>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문학 기독교문학은 독자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서 정확히 증거 할 때 영원한 가치를 얻게 된다. 기독교문학은 오늘날 기독교적 작가가 이 시대를 사는 인류에게 그 심층에 있어서 복음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의 의미와 세계의 목적을 부여하는 문화적 선교이다.(김영한, 한국기독교문화신학 p.541, 1995. 성광문화사) 기독교문학은 궁극적으로 생명 혹은 구원을 지향하는 특성이 있다.(강요열, 기독교문학의 전형연구, 1999년 신앙과 학문 4권2호)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기독교 문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문학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길을 안내하는 기독교문학의 필수적인 구비 요건이다. <5>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문학 기독교문학은 그 최종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둘 때 하나님과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신적 존재의 통일성과 위격의 삼위성을 처음부터 보장하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계시로부터 출발한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접할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은혜에 참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내적 존재의 신비를 향하여 침묵하고, 오로지 그를 경배함으로써만 삼위일체 신비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기독교 문학은 성경과 기독교적 상상력에서 발현되는 고도의 문학적 아름다움을 통해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문학은 창의성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창의성은 하나님의 영광과 모든 사람의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 기독교문학은 비로소 소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6> 선교문학으로서의 기독교실천문학 기독교문학은 순수문학적 차원에서 보기보다는 실천문학적인 관점으로 보게 되면 선교문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문학을 통한 선교인 것이다. 선교활동의 범위에서 되어지는 모든 문학적 행위들을 선교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번역, 찬송가 작시, 교육자료집 집필, 문서선교활동 등과 같은 다양한 활동들이 다 선교문학에 해당할 것이다. 작가가 단순히 기독교적 작품을 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들을 선교적 활동에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작가 자신이 직간접으로 활동범위를 높여 가는 것이다. 선교현장을 찾아가 선교의 현장을 독자들에게 가깝게 하도록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므로 작가가 단순히 작품 하나를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작가 자신이 선교현장에서 주인공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이 시대는 읽을 책의 홍수를 만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양서인지, 어느 것이 영혼을 살리는 작품인지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문학은 어느 때보다도 더 선교적인 사명이 큰 것이다. 기독교문학은 개혁신앙 전통 위에 설 때에 본연을 빛을 발할 수 있다. 성경은 기독교문학에 있어서 주제와 소재의 보고(寶庫)이다. 독자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거나 믿음을 더 상승시키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 기독교 문학이 추구해야할 중요한 역할이다. 은혜의 깊이를 알게 하는 것은 기독교문학이 표현해야할 주요 특징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길을 안내하는 기독교 문학의 필수 요건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 기독교 문학은 비로소 소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독교문학은 개혁신앙의 전통 위에서 성경에 근거하는 문학, 믿음을 갖게 하는 문학, 은혜의 깊이를 알게 하는 문학,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문학,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문학으로 한층 성숙해져야할 것이다. 현대문학은 비전이 없다는 데 그 비극성이 있다. 지금 이 시대는 모든 문학이 가능한 시대가 된 반면에 참 가치가 있는 문학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 20세기 문학이다. 일반문학에서는 낭만주의의 뒤를 이어 자연주의의 문학이 성행하였고, 그 뒤를 이어 혼란이 판치게 되었다.(김희보, 한국문학과 기독교문학. p. 341) 이러한 상황에서 21세기에는 혼합주의사상으로 흘러 다원주의문학이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다원주의 문학은 뿌리도 없고 생명도 없는 괴물형 문학이다. 말세가 가까운 이 시대에 기독교 문인들이 세상의 문인들에 기생하여 그들의 비위나 맞추고 그들의 치부에서 나오는 단물을 빨아먹기에 바쁜 것을 보라. 이것은 문학세계가 소돔과 고모라 시대로 변해버린 것을 증명하는 현상이다. 실상 20세기에 들어 일부 작가들은 진지하게 하나님을 추구하고 있다. 때문에 20세기 기독교문학을 가리켜 반성시대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썩어지고 멸망해 가는 21세기의 문학을 구출할 유일한 대안은 기독교문학 뿐이다. 더 나아가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선교의 귀한 역사를 하는 사명이 문학에 있다. 문인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들어가 그들에게 기독교문학을 통한 직간접의 선교적 다양한 문학활동을 벌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1세기 기독교문학은 선교문학으로 자리하고서 더욱 적극적인 문학선교사역으로 뛰어들어야할 것이다. 3. 기독교문학과 크리스찬문학 기독교문학에 대한 정의나 개념에 대해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작품과 작가를 별개로 생각해야하느냐 아니면 동일하게 보아야 하는 문제를 말한다. 일반 이론상으로 볼 때는 당연히 별개로 보아야 하지만 우리의 정서상으로 볼 때는 그게 아니다. 기독교문인이 기독교인으로써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또는 덕스럽지 못한 부분들이 노출되었을 때에 갖는 실망감과 더불어 작품까지도 도매금으로 평가절하 되거나 욕을 먹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문학과 작가는 적어도 생활과 철학이 어느 수준의 도덕성과 크리스찬으로서의 모범적인 평가를 받을 때 더욱 빛이 나며 많은 독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계간 크리스찬문학 2002. 가을호. 통권37호 p.49) 크리스찬문학 크리스찬문학은 크리스찬이 창작하는 문학이다. 크리스찬은 누구인가? 크리스찬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므으로 인생관이 새롭게 변화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찬문학은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지닌 문학이라야 한다.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종교냄새를 피워서는 안 된다. 문학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어져,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남보다 경건생활과 기도생활에 힘써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야할 것이다. (계간 크리스찬문학 2002. 여름호. 통권36호 p.54) 문학이 청각적이기 전에 시각적 문학임을 이해한다면 설교처럼 신앙을 지나치게 강요하거나, 너무 주관적 도취문학이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기독교문학이 하나의 선교도구라는 사명적 측면에서 보면, 신앙의 직설적 표현은 삼가하는게 좋다. 즉 상징성과 은유성을 좀더 살려야 한다. 가급적이면 하나의 시에 똑같은 시어를 자주 반복하는 것은 역량의 부족을 의미하게 된다. (계간크리스찬문학 34호 2001. 겨울호,p.59) 기독교문학은 설교와 엄연히 구별된다. 설교가 깨닫게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직접적 표현을 한다면, 기독교문학은 내적 감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간접적 표현을 한다. 이 한계를 이해하지 못한 목회자들 중 상당수가 일종의 운문적 설교를 기독교적 시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크리스찬문학 35호 2002.봄호, p.44) 기독교가 우리나라 근대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특히 근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익히 아는 바다. 그러나 기독교문학이 겉으로 하나님을 외치거나 자신의 신앙을 강요하는 설교문이나 간증문 정도의 수준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채 절름발이 문학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기독교 정신이 작가의 삶과 작품에 진실하게 투영되어 있어야 기독교인은 물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감동과 감화를 줄 수 있고 문학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계간 크리스찬문학 2001. 봄호. 통권31호 p.51) 대부분 응모자들이 기독교문학에 대해 아주 편견 된 생각을 갖고 있다. 예수, 십자가, 하나님, 교회 등의 시어가 빠지면 아예 작품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갇혀있는 문학이 결코 기독교문학일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詩 문학의 특질이 사상을 정서적 감동으로 형상화시킴에 있고 그 기능이 우리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생의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계간 크리스찬문학 1999. 겨울호. 통권26호 p.60) 기독교문학은 기독교만의 독특한 영성이 작품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믿는 것처럼, 하늘로부터 오는 그 어떤 영감을 통한 감화가 언어 속에 젖어 있어야 기독교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문학을 지망하는 분들은 무엇보다 영감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는 기도와 명상의 생활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계간 크리스찬문학 2001. 가을호. 통권30호 p.50) 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라는 물음에 시인의 가슴이 뜨겁기 때문이며, 시인은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뜨거운 가슴을 지닌 사람이라는 대답이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주관적인 사상이나 감정을 기술하는 시를 관념시라 하고, 詩 속에 사물의 속성만 객관적으로 그려나가는 시를 사물시라 하는데 이 두 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시의 참 맛이 난다. (계간 크리스찬문학 2001. 여름호. 통권32호 p.81) 문학이 삶의 표현이자 해석이요, 비평이라고 볼 때 문학작품은 창작자 개인이 정신세계를 형상화한것인 동시에 그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의 신물이기도 하다. 독자는 문학에서 예술적 미의 감동과 함께 그 즐거움을 향수하면서 삶에 대한 의미와 교훈을 깨닫고 가르침까지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와 예술, 종교와 문학은 불가분의 유지할 수밖에 없고, 엘리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문화도 종교와 함께 가 아니면 나타날 수도 발전할 수 도 없었다. 다만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서 문화가 종교의 산물처럼 보일 수도 있고, 혹은 종교가 문화의 산물로 보일 수도 있을 뿐이다." 시가 시인에 의해 창작되어지고 독자에 의해 읽혀지고 민중에게 애송되는 까닭은 삶이 있고, 숨결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때 생의 창조일 수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시를 쓴다고 상투적인 종교적 상징을 시어로 남발하는 것은 고전에 속한 답습이다. (계간 크리스찬문학 2000. 겨울호. 통권30호 p.52) 감동이 없는 글은 문학의 값어치가 없는 글이라 할 것이다. 특히 장르의 특성상 수필은 더욱 그렇다. 진실을 바탕으로 철학과 감동 더 나아가서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들어 있어야 한다. 출처 : 다음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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