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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ry

 성모피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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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지도하신
강준형님께 감사드립니다
분 류 신앙시
   
신앙시란
시는 고통의 산물이다.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이 크듯이, 시인도 한 편의 시를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겪는다. 영혼의 노래인 '신앙시'는 더욱 그러하다. 산고(産苦)가 큰 만큼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 또한 지극하듯이, 한 편의 시를 낳기 위한 고통이 클수록 작품에 대한 희열과 사랑은 그만큼 큰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도 쉽게 쓴 시들이 많이 눈에 띈다.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감상의 나열이 시가 아니다. 신앙의 넋두리나 푸념으로는 '신앙시'가 될 수 없다. 깊이 기도하는 자세와 거룩한 고통을 통해 영혼의 진액처럼 한 방울씩 시상이 표백되어야 한다.

이번 제9회 <기독공보 신춘문예>에 응모된 많은 작품들은 대단히 미안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쉽게 쓴 시'로 보여 진다. 선자(選者)의 이런 충고에 항변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고뇌하며 이 시를 썼는데!"하고 말이다. 고뇌를 했다면 '고뇌의 흔적'이 있도록 써야 한다. 애써 고심해 놓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방법이 서툴러 무미건조(無味乾燥)한 타작(打作)을 하고 말았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이런 점에서 시작(詩作)의 기본을 익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자동차는 정해진 도로를 달리고, 기차는 레일을, 항로는 보이지 않으나 바다의 배와 하늘의 비행기도 정해진 항법에 따라 운항을 하지 않는가. 시도 산문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엄격한 기본(基本)이라는 것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말하자면, '시의 길'이 있고 '시의 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녕 좋은 시를 써서 하나님께 예배와 찬송을 드리고 읽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를 원한다면 훌륭한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기도하는' 한편, 좋은 시론(시작법)에 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무릇 시를 포함한 예술은 천재성의 산물이라고 치우쳐 생각한 나머지 후천적인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좋은 작품이란 '선천'과 '후천'의 조화 속에서 나오는 법이다
     
아래글 기독교문학과 선교문학 / 21세기시인통신학교장 김성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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