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건강 관계성 회복으로 부터 온다
얼마 전 한 단체가 진행하는 '아버지학교'의 5주 훈련 과정을 수료하였다. 목회를 핑계로 가정의 모든 일을 아내에게 위임하고 가정을 소홀히 했던 나에게 아버지학교는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위치와 소중함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의 고마움을 가슴깊이 느끼는 복된 시간이 되었다. 특히 이 훈련과정을 통해서 한국 아버지들의 현주소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은 가정목회 사역의 중요성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어 감사했다. 훈련에 참석한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내의 권유나 주위의 사랑하는 분들의 권유에 의해서 참석을 했다가 아버지학교가 요구하는 숙제와 선포되는 말씀， 그리고 찬양과 나눔을 통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거대한 영적 물줄기가 한국교회의 연합된 힘을 통하여 지역과 신분을 초월하여 흘러가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아버지학교에서 훈련자들에게 매일 요구하는 숙제 가운데 아내와 자녀들을 매일 안아주고(hugging) 사랑한다고 말하기와 아내와 자녀에게 아론의 축복(민6:24-26)으로 매일 축복기도 하는 것이 있다. 사실 이 숙제는 우리 가족의 경우에는 일상화 된 일이어서 숙제가 되지를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숙제가 대부분의 아버지들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숙제를 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경험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 가정들이 얼마나 사랑의 표현이 인색한지를 보여주는 실상이라 느껴진다. 아버지나 아내， 그리고 자녀에게 편지를 쓰면서 일평생 처음 써보는 편지라 어떻게 써야할지를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편지들 속에 감초처럼 들어있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그리고 숙제라는 과중한 짐 아래 실제로 부모와 만나는 시간이 거의 없다. 자연히 부모는 영향력을 상실하고 다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뒷바라지하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래서 하루에 1분도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는 중고등학생이 20%가 넘고， 대학생 10명 가운데 6명이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10분 안쪽이거나 거의 없는 현실이 우리 한국 가정의 실상이다. 철저한 관계성의 단절이요， 부모의 영향력 상실인 셈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의 영향력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남아있는 가부장적 문화에서부터， 체면문화， 일문화， 음주문화， 성문화， 레저문화， 폭력문화. 사이버문화， 과열 입시문화， 분단문화， 불신문화 등 건강을 위협하는 문화의 홍수가 범람하고 있으며 우리의 가정들은 여기에 대하여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다. 문화는 마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좋은 공기를 마시면 건강을 유지하게 되지만 나쁜 공기를 마시면 건강을 해치며 온갖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관계성을 회복하라
요즘 너도 나도 '웰빙' 열풍이다. 육체적 질병이 없다고 해서 모두 건강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건강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필요까지 충족되었을 때이다. 한 의사의 말을 빌리면 세계 각국의 장수마을을 조사한 결과 건강 장수의 주된 비결은 원만한 인간관계라고 말한다. 나와 나와의 관계， 나와 이웃(사회)과의 관계， 나와 자연과의 관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샘병원 원장을 지냈던 박상은 박사는 건강비법으로 '세포와의 대화'를 추천한다.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가 하나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자리에 눕기 전， 간을 쓰다듬으며， 심장을 가만히 만지며， 팔다리를 주무르며 하루 동안 나를 위해 수고해준 모든 나의 세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면， 생명체인 모든 세포들은 환호를 지르며 더욱 충성을 다짐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성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관계성은 사도 바울에게서도 발견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성화의 삶의 비결을 두 가지로 보여 준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이고， 다른 하나는 '피조물 앞에서'이다. 그는 특히 로마서 8장 19절 이하에서 피조물의 탄식을 말하면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한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의 피조물 앞에서의 삶의 원리를 깨닫고 나에게도 습관이 하나 생겼다. 이른 새벽 세면대 앞에서 나를 밤새도록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물을 만나며 "반갑다 물아! 내 얼굴을 씻기기 위해 이토록 나를 기다려주니 고맙구나! 오늘 하루도 네가 씻겨준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며 멋진 하루를 보낼 것을 약속하마!" 물과 아침 대화를 하는 습관이다.
꿈을 보여주는 부모
건강한 가정으로의 회복은 관계성의 회복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원만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역할과 특성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그 속에서 일치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자녀 양육권이다. 성경은 부모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고 가르친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인양 생각하여 부모 마음대로 자기 기준에 맞춰 자녀의 인격과 자라나는 꿈을 짓밟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은 부모가 자녀에게 절대적인 신앙적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꿈을 보여주는 자다.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예언자'(The Prophet)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말을 들려준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지만 생각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그들대로의 생각이 있을 테니까요. 그대들은 그들이 몸담아 있을 집을 마련해 줄 수 있으나 그들의 마음을 잡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미래에 머물러 있어야 하니까요. 그대들은 그들과 같게 돼 보려고 노력은 할 수 있으되 그들이 그대들을 닮으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생이란 뒷걸음 칠 수도， 어제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곧 자녀에게 꿈을 보여주는 부모가 되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꿈'은 그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말한다. 부모는 자녀가 하나님의 비전인 꿈을 발견하도록 하나님을 반사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친히 성육신하심으로써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하나님을 반사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적 삶을 살아내는 것을 통해 드러내 보이는 길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믿음의 영향력이다.
주님은 제자들과 삶을 함께 하면서 자신의 삶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꿈)를 보여주셨다. 믿음의 삶을 통하여 믿음을 갖게 했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뒤 행하도록 제자들을 많은 질문과 비유의 말씀으로 훈련시키셨고， 공동체 훈련을 통하여 관계성을 가진 제자로 훈련시키셨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부분이 아닌 전체를， 순간이 아닌 영원성을， 그리고 순결과 용기와 소명을 가진 제자로 훈련시키셨다. 부모는 예수님의 이런 삶을 반사하여 믿음을 가진 자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진 자녀， 자신의 일을 찾아 기쁨으로 일하는 소명을 가진 자녀， 이웃을 사랑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성을 가진 자녀， 고기를 먹는 법이 아닌 고기를 잡는 법을 소유한 창조적인 자녀， 다양성을 인정하고 전체(영원)를 볼 줄 아는 자녀， 순결하고， 정직하며， 성실한 자녀， 그리고 용기 있는 자녀로 양육해야 한다.
복을 빌어주는 부모
부모의 역할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자녀를 축복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부모가 자녀에게 축복하기를 원하시며 축복하면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부모는 축복의 통로이다. 가정예배를 드리며 자녀를 위해 입술을 벌려 기도함으로 축복하고， 자녀가 잠들기 전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얻고 축복하며， 자녀가 학교에 가기 전 자녀를 품에 안고 축복해서 보내는 등 자녀를 축복하는 일은 부모로서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이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의 입술과 손은 저주의 통로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됨을 뜻하는 말이다.
오늘 내가 무심코 뿌린 말의 씨앗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 두렵다는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이제는 자녀를 향한 축복의 한 마디 말을 위해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가져야 한다. 관계성 단절과 부모의 영향력 상실의 삭막한 가정에 꿈을 보여주고 복을 빌어주는 새로운 웰빙 열풍이 5월의 신록처럼 풍성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박명화 목사 수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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