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변호사 인터뷰
인물캐러밴］“내 인생 나도 못말려”
대학 재학중 사시 최연소합격, 외시 차석, 행시 수석이라는 ‘3관왕’의 기록을 세웠다. 거기에 서울법대 수석졸업의 영예도 안았으니, 섣부른 찬사는 오히려 민망스러울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요즘은 여기저기 TV프로에 출연하는가 하면 새로운 증권투자 기법을 개발해 강연에 불려다니느라 바쁘다. 이쯤 되면 본업이 무엇인지 아리송할 정도다. 시간당 강연료만 해도 국내에선 가장 비싼 축에 꼽힌다는 고승덕(高承德·46) 변호사. 그가 시간을 쪼개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지금껏 좌충우돌하면서 살아온 측면이 많다”면서 “고시에 너무 일찍 합격했기에 여기저기 기웃거린 결과”라고 말문을 열었다. 목에 잔뜩 힘을 줄 만도 하건만 첫마디부터 솔직하다. 사시에 이어 다시금 외시·행시에 합격한 것도 마찬가지. 졸업반이 되었으나 친구들이 고시공부에 매달리는 바람에 같이 어울리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외교관은 애초부터 뜻이 없었고, 행시에 합격하곤 내무부를 지원하려고도 했으나 결국 합격 통지서를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고 밝혔다.
원래는 의사가 꿈이었다. 부친이 서울의대를 나와 광주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쪼들리진 않았으나 결코 윤택하지 못했던 집안의 처지를 생각했다. 빚을 지고 살지 말라며 신용카드조차 쓰지 못하도록 하셨던 고지식한 아버님. 평생 휴가라곤 가본 적이 없는 분이셨다. 과외공부도 허락하질 않으셨다. 잠깐씩 몇과목 그룹지도를 받은 것도 어머니께서 몰래 뒷바라지하신 덕분이었다. 의사의 꿈을 접고 법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은 그런 때문이었다.
수원지법 판사로 발령받은 것은 1984년. 결혼도 했다. 박태준 당시 국회 재무위원장의 막내사위. 안팎으로 더 바랄 것 없는 생활이었건만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만났다. 얼굴이 온통 찢겨 붕대로 싸맨 채 두달간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 생명에 지장이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계획대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비로소 깨달았다. 인생 무상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싶었다. 전환점을 찾는다는 핑계로 휴직계를 내고는 훌쩍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하버드와 컬럼비아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내친 김에 변호사 자격까지 따냈다.
요즘은 주로 민사·행정소송을 대행하고 있다. 서울시 고문변호사도 맡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의 손해배상소송을 처리했으며,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돈의 노예들’이란 제목을 달아 이대생들 사진을 실었을 때도 소송을 맡아 승소했다. 말이 쉬워서 그렇지 시효에 있어서나 그런 것이 소송 대상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조차 선례가 없던 시절이었다. 유학 때도 그러했지만 고달팠던 뉴욕 변호사 생활을 통해 호된 훈련을 거친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장밋빛의 탄탄대로가 뚫려 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사무실을 냈을 때는 사건이 들어오지 않아 직원들 월급 주기도 바빴다. 집에 생활비를 갖다 주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왜 먹고사는 일까지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한탄했을 정도였다”고 털어놓는다. 그때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행복의 법칙’이다. 나름대로의 ‘개똥철학’이라고나 할까. 일이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라도 주어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할 수 있다니 참으로 속 편한 팔짜다.
그가 연구해냈다는 증권시세 분석 방법으로 질문을 돌렸다. 몇해 동안의 종합지수 흐름을 분석한 끝에 터득했다는 ‘파동원리’. “파동의 방향과 거래량 및 여러 파동 사이의 관계를 토대로 시장 흐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파동이 서로 모이고 흩어지는 데 따라 힘이 커지고 약해지게 마련인 원리가 주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실제 상황에서도 거의 들어맞는단다. 맞고 틀리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그런 이론을 독창적으로 개발해냈다는 점이 신통하다. ‘고시 3관왕’의 명예를 걸고 내놓은 것이니 단순한 ‘족집게’ 차원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증권회사에 돈을 맡겼다가 반토막으로 줄어든 데 자극받은 것이었다. 더구나 ‘작전세력’이 한꺼번에 물량을 털어내는 ‘설거지’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집에서도 설거지를 하지 않는데 왜 내 돈으로 남의 설거지를 해야 하느냐”는 표현이 걸작이다. 그래서 증권사측의 잘못을 입증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주식 공부다. 결국 기본 원칙을 무시한 잘못을 몇가지 찾아냈다. 곧바로 소송절차를 밟아 손해금액의 30% 정도를 건져냈다니, 보통 사람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는 개인 투자자들에 대한 걱정도 나타냈다. ‘개미’라는 표현 자체가 개미핥기에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뜻한다는 얘기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링 위에 올라서는 쪽박 차기 십상”이라고 했다. 그 자신 수많은 증권서적을 훑어보고도 어설프게 깨지곤 했다. 그가 증권사의 보고서를 ‘우도강탕(牛渡江湯)’이라 비꼬는 것도 그런 때문. “소가 건너간 개울물로 국을 끓여놓고 고깃국이라고 우기는 격”이라는 것이다.
증권 강의는 더 이어진다. 기업 내재가치가 주가를 결정한다지만 분석능력이 없는 개미들에게는 어림없는 소리이며,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펫이 ‘가치 투자’를 지향하고 있으나 미국에서도 ‘추세 투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므로 시장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가는 경제동향보다 앞서 움직이는 데다 요즘 현물거래는 프로그램 매매를 따라가게 마련이므로 선물 동향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역시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얘기다.
한때는 정치권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문제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면서 국민회의에도 양다리를 걸쳤다 해서 철새 행각이 입방아에 올랐다. 결국 출마를 포기함으로써 일단락됐으나 한동안 온갖 헛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병역을 기피했다느니, 마마보이라느니, 심지어 어느 탤런트와 염문을 뿌리고 있다느니 하는 따위였다. “그때는 무척 흥분했지만 지나고 나니 정치란 으레 그렇게 비열한 것”이라며 빙긋이 웃고 말았다.
아직도 정치에 미련이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다른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정치에 뛰어들 준비가 안됐다는 것이다. 그냥 내뱉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일단 증권관련 연구를 마무리짓는 것이 더 시급하다. 컴퓨터가 파동 신호를 저절로 인식해서 주문을 내고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 개발도 진행중이다. 현재 시뮬레이션을 하는 중이므로 이르면 연말께는 결과를 알 수 있다. 앞으로 뉴욕증시와 나스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요즘도 주말에는 증시 흐름을 분석하기 위해 계속 컴퓨터에 매달린다. 그것이 가장 큰 취미이자 오락이다. 한때 골프를 즐기기도 했으나 디스크 때문에 그만둔 상태다. 컴퓨터 앞에 몇시간씩 앉아 있다보니 허리가 온전할 리 없다. 저녁에 컴퓨터 앞에 앉으면 그대로 날이 새기도 한다. 적어도 10시간 정도는 화장실에 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한번 몰두하면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다”며 “그것이 내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실토다.
결혼 생활에 관심을 보였더니 매우 난처한 표정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성격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지난해 끝내 이혼하고 말았기 때문. 부인이 98년초 1남1녀의 자녀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기러기 아빠’ 처지가 됐을 때부터 별거설에 시달렸던 그다. 점심·저녁은 밖에서 해결한다 해도 아침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어머니께서 가끔씩 들러 밥과 반찬을 해놓는다”는 답변이다. 다른 여자들이 집안에 들락거리면 쓸데없는 구설수에 휘말리게 될 것을 걱정한 때문일 것이다.
그의 코미디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시사 코너에 출연해 딱딱한 생활법률을 재미있게 풀어주는가 하면 짓궂은 질문에 태연히 농담도 주고받는다.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지금은 어떤 즉흥 문답도 술술 넘어갈 정도가 됐다. 주말이면 가벼운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즐긴다. 물론 가는 곳마다 남들이 관심을 갖고 쳐다보는 것이 부담이긴 하지만 그것마저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달에 거의 두어번씩은 거르지 않고 영화를 관람한다. 그것도 일흔이 넘으신 노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간다니, 효도 방법도 매우 유별난 편이다.
욕심이 있다면 계속 책을 써내는 것이다. 여유가 주어지는 대로 한해에 적어도 2권씩은 써낼 작정이다. “조만간 수기집이 출간되며 연말쯤에 또 다른 한권이 나올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겪으며 행로를 헤쳐가는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갈지 궁금할 뿐이다.
<허영섭 전문기자 gracia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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